누가 옳은가를 결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찾으려는 것이다.
'소통은 원래 안 되는게 정상'이라는 게 내가 얻은 결론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소통이란 조금만 노력하면 잘 되리라 착각하면 산다. 동물행동학자들은 오랫동안 동물소통을 상호 협력적 행동으로 이해한다. (중간생략) 소통은 협력이 아니라 밀당의 과정이다. 그렇다면 소통은 당연히 일방적 전달이나 지시가 아니라 지난한 숙론과 타협의 과정을 거쳐 얻어지는 결과물이다.
황동규 시인은 외로움과 '홀로움'을 구별한다. 그는 '홀로움'을 환해진 외로움이라고 묘사한다. 스스로 선택한 혼자 있음은 사무치는 외로움이 아니라 혼자서도 충만한 '홀로움'이다. '홀로움'은 말하자면 '자발적 외로움'이다. 자발적이고 철저한 자기 시간 확보가 창의성과 생산성을 담보한다. (75)
나는 취미 독서보다 '기획독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붇들고 씨름하는 독서가 진정한 독서다. 학창시절 기회가 닿지 않아 배우지 못한 분석철학, 양자역학, 진화심리학 분야의 책들에 도전하는 기획을 세우고 공략해야 비로소 내 지식의 영토를 넗힐 수 있다. 독서는 '일'이다. 그래서 빡세게 해야 한다. (80)
소통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힘들어도 끝까지, 될 때까지 열심히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가 숙론을 통한 소통을 배워야 할 때다. (160)
학생들에게 칼 세이건의 이 말을 들려줘도 좋을 것이다. "질문에는 순진한 질문, 지루한 질문, 부적절하게 들리는 질문, 지나친 자기 비판을 앞세운 질문 등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질문은 이 세상을 다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이 세상에 멍청한 질문이란 없다. "진짜 멍청한 질문은 묻지 않은 질문이다. (180)
올더스 헉슬리는 1945년에 출간한 <영원의 철학>에서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만 사랑할 수 있다'라고 단언했다. 이어서 그는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 것을 완벽하게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며 사랑을 지식의 한 유형으로 규정했다. (202)
최재천 교수의 강의를 들어서인지 그가 정말 하고 싶은 진정성을 이 책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결국은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을.
하버드에서 토론수업을 진행하고 한국에 와서도 주입식이 아닌 숙론을 자리잡게 하기 위해 노력하신 과정, 이런 저런 위원장을 겪으며 얻은 어려움, 에피소드들, 그리고 숙론을 하기 위한 방법들이 적혀 있다. 책모임을 오래 했으니 이젠 자연스러운 숙론의 과정이지만 대중강연이나 대학에선 여전히 주입식이 익숙하다. 질문하기가 아직 무섭고 말도 조리있게 하지 못하는 나에겐 숙론을 위한 소통과정이 여전히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이의 생각을 들어보고 당장의 결과를 도출하진 못하더라고 끊임없이 토론하고 소통하고 도출하는 힘든 과정을 겪어야만이 진정한 민주사회가 자리 잡는 것이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말은 "기획독서"
이제서야 조금씩 어려운 책을 읽으려고 하곤 있지만 여전히 난 취미독서가 80%이다. 일처럼 빡세게 독서도 체계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나의 하루도, 루틴도, 나의 꿈도 좀 더 정성을 다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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